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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

창조사와 자아 표현 예술

초기 창조사와 문학연구회의 대립 원인:

1) 문학주장의 차이: 문학연구회는 인생을 위한 예술을 주장, 창조사는 감정을 주관적으로 나타내고자 했음.

2) 문학연구회는 사실주의, 창조사는 낭만주의.

3) 문학연구회는 동·북 유럽의 항쟁문학을 동경, 창조사는 서방 현대파 예술을 동경.

 

1928년의 혁명문학 논쟁 주체가 된 창조사는 자아표현론을 주장하던 데로부터 계급의식을 전달하는 유성기론을 주장하면서 프로문학으로 전향했다.

 

1. 무목적의 목적성

 

창조사는 성방오의 <신문학의 사명>, 옥달부의 <소설론>등에서 모두 예술의 무목적성을 표방했다. 그들은 예술의 목적성을 부정함으로써 예술을 위한 예술을 했다. 또한 문예의 목정성 문제는 줄곧 논쟁되어왔기에 인생파와 예술파의 경계도 비교적 분명했다. 프랑스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예술이 미덕과 자유 혹은 사회 정치적 목적이라든지 등 다른 무엇을 위해 존재하던 시기에서 1930년대에 예술을 위한 예술이론을 선전하던 고티에 등 낭만파가 출현한 것처럼 중국의 예술을 위한 예술도 이러한 배경 하에 탄생하였다 볼 수 있다. 하지만 볼테르나 루소 등 귀족들과 제3계급의 대표들이 사회 정치적 선전을 하면서도 자산계급 청년들의 급진적이고 격앙된 포부를 가지고 자신의 해방을 쟁취하는 투쟁에 참가하고자 하는 행동 또한 무목적성인 와중에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창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조사가 설립될 당시 5.4운동이 쇠퇴기에 접어들 때었지만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해방을 쟁취하고자 했으며 공리주의에 반대하고 문예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그들은 문예가 사회 인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지만 문예가 스스로 존엄을 회복할 것을 요구했다. 욱달부는 진실과 미를 갖추는 것이 문예의 목적이라 여겼으며 그것을 갖추어야만 결과적으로 선에 도달할 수 있어 작품의 가치가 높아지며 독자의 마음을 밝혀주고 숭고한 뜻을 가지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또 곽말약은 완전과 미를 제창했으며 예술이 쓸모없는 것처럼 보여도 커다란 쓰임이 있다면서 인성 각성, 길 잃은 양을 불러오는 성경의 작용, 더러운 물을 가라앉히는 아교의 작용,생명을 고무시키는 최고의 불법이라는 비유를 사용했다. 즉 창조사의 예술관은 강력한 시대에 대한 사명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단지 예술가가 예술을 창조한 뒤에 그 예술이 인생에 영향을 끼치거나 간접적인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지 작가가 창작을 할 때 먼저 결과를 평가한 다음에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곽말약과 욱달부의 작품은 반봉건적인 격정이 충만했다.

때문에 이러한 예술적 가치관을 무목적의 목적성이라 불렀다.

 

2. 표현파의 예술론

 

문예의 본질에 대한 견해는 역사적으로 재현파와 표현파로 나뉜다. 재현파는 문예가 생활의 반영이나 모방, 혹은 재현이라 여기는데 문학연구회가 이것에 속하고 창조사는 천재를 숭상하고 문예가 자아를 표현할 것을 강조하여 표현파에 속한다.

1) 자아표현에 있어 창조사 작가들은 서방의 현대 철학이나 문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다. 곽말약은 베르그송의 생명 철학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심리학을 토대로 하여 예술을 생명력의 표현이자 내면 심리에 존재하는 고민의 산물로 간주했고 욱달부는 유아주의자 스티너와 니체의 초인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기에 자아에 대한 강렬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 자아 확장의 심리 상태를 가장 충실하게 표현한 시는 곽말약의 <하늘개>였다. 자아확장사상은 봉건적 군권이나 가족 관념에 의해 축소된 자아의 가치에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2) 표현론에 있어 욱달부는 예술이 자아의 표현이고 생활 자체도 자아를 표현하는 과정이라 여겼다. 또 욱달부는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갖고 있어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싶은데 재능이 부족하여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자신을 대신해서 표현해줄 사람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와 비슷하게 크로체는 유명한 직관 표현론자인데 직관은 표현이며 직관과 예술이 모두 서정의 표현이기에 직관이 바로 예술이라 했다. 또 그는 심미의식과 감상 능력도 예술의 창작활동에 포함시켰다. 욱달부는 크로체의 이론을 수용하고 발전시켰다 볼 수도 있다.

3) 창조사의 자아표현 주장: 창조사 작가들은 자아를 표현하도록 주장함으로써 강렬한 창조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창작 영감과 예술적 충동에 주목했다. 영감과 충동은 직관성과 잠재의식의 표현이다. 창조자 작가들은 중국이라는 피화 눈물의 땅위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혁명 사상이 강렬했고 중국의 고통스러운 삶이 자신들의 영감과 충동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예술작품과 현실 생활과의 직접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표현론에서 출발하여 재현된 예술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성방오는 빙심과 노신의 작품들을 난도질했는데 빙심의 <초인>, 노신의 <광인일기>,<공을기>,<아큐정전>,<>,<내일> 등 작품들에 악평을, 노신의 <풍파>,<고향>,<단오절>,<부주산>에 대해서는 호평을 주었다. 그 기준이 바로 표현론에 근거된거 였는데 재현된 소설은 모두 나쁘고, 표현된 소설은 모두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노신의 현실주의 예술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는데 문예의 표어는 표현이지 묘사가 아니며, 묘사는 결국 문학가의 말단적인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노신은 반격하여 <외침> 2판을 인쇄할 때 <부주산>을 삭제하는 것으로 그의 전집에 다만 저속함만 날 뛰게 했다.

 

3. 낭만주의 예술 정조

 

1) 현실주의가 문학의 주류로 인정되었을 때 문학사에서의 투쟁은 현실주의와 반현실주의로 나뉘었다. 창작 실천에서 볼 때 곽말약과 욱달부는 풍부한 낭만주의적 예술 정조를 가지고 있었다. 창조사의 낭만주의 특징은 표현이라는 예술관에 근거하여 자아를 표현하는데 치중하여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색채가 짙었다.
2) 제재의 선택에 있어서 신변의 제재를 취하거나 지식 계층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 대다수였다. 곽말약과 욱달부의 작품 모두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소설을 신변소설’, ‘자아소설혹은 사소설이라고 부른다. 역사 소설과 역사극도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아를 표현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소설에 자아의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하여 창조사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작가들은 신변의 재료를 통해 자신이 느낀 고독과 실망 등의 정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욱달부의 잉여인간이 바로 그러하다. 이 소설에서의 중심 사상이 그의 모든 작품의 정서를 표현했다.

3) 감정에 대한 중시는 창조사 작가의 공통된 인식이지만 예술 창작 중에서는 서로 다르게 표현된다. 곽말약의 감정은 호방하기도 하고 부드러운 감정처럼 완곡한 면도 있었지만 욱달부의 감정은 비교적 의기소침하였다. 하지만 감정의 흐름에 많이 따랐기에 창조사 작가의 작품들은 글자와 구를 다듬고 스토리와 구성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정교하고 세밀한 조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정서로써 독자를 감동시키고자 했다. 곽말약은 영감에 따라 시를 창작하여 감정이 이르는 데까지만 썼고 욱달부오 감정으로써 문장을 끝맺고 소설을 사용해 정서를 전달했지 기교에 치중하지 않았다.

 

4. 현대주의 사상의 영향

 

5.4시기 신문학 작가들은 서구 신사조를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창작과 비평을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창조사 작가들이 본연의 낭만주의적 경향에 의해 신낭만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주의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주관을 존중하고 자아를 표현하며, 개성을 발휘하는 측면에서는 현대주의에 접근된다.

 

창조사가 가장 많이 받아들인 현대주의는 심리분석주의 분야이다. 심리분석주의는 프로이드의 심리분석 학문으로 범성욕주의와 잠재의식이다.

1) 창조사 작가들은 변태적인 성 심리를 즐겨 묘사하였는데 욱달부의 창작이 특히 그렇다. 그의 <타락>, <은회색의 죽음>, <남천>, <망망한 밤> 등에서 모두 변태적인 성 심리를 가지고 있다. 곽말약도 <늦봄>,<에로티의 무덤>,<카라멜 파는 아가씨> 등 성 심리 소설을 썼고 도정손의 <금계>또한 변태적인 성 심리를 다뤘다. 보통은 편집증으로 표현되었다.

2) 꿈은 프로이드의 심리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과제이자 심리분석과 소설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수단이다. 곽말약은 <늦봄>에서 몽경을 통해 잠재의식을 표현하고 <카라멜 파는 아가씨>에서도 꿈속에서 밀회를 표현한다. 이러한 소설에서는 꿈을 통하여 억압적인 잠재의식을 표현하였다.

 

그 외 창조사 작가들에게 비교적 큰 영향을 끼쳤던 또 하나의 현대주의 유파는 상징주의이다. 주자청은 <중국신문학대계·시집><서언>에서 창조사의 중요한 세 시인, 왕독청, 목목천, 풍내초가 상징파 시인이라고 평론했지만 창조사의 작가들이 반드시 중국 상징시의 대표적인 작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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